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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닐라 생활] 잠보앙가 출신의 레즈비언 무슬림 레이가 사는 세상
⚐ 작성일:
2020년 5월 4일
"납치범들에게 돈을 주고 마닐라로 돌아왔는데, 한 달 뒤에 A를 감시했던 청년에게서 연락이 왔었대. 근데 그 이유가 뭔 줄 알아?"
"왜요?"
"핸드폰 로드가 없다고 좀 보내주면 안 되겠느냐고 했다잖아?"
친구 A가 민다나오를 방문하여 괴한으로부터 납치를 당했다가 풀려났다는 이야기를 하면서도 띠따는 웃고 있었다. 마약이니 납치니 하는 것을 영화 속에서나 보았던 나로서는 친구의 납치 이야기가 이렇게 유쾌한 이야깃거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매우 당황스러웠지만, 띠따의 설명에 따르면 이미 오래전의 이야기인 데다가 납치를 당했어도 다친 곳 하나 없이 무사히 풀려났으니 그 후의 이야기를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웃음을 가득 머금고 띠따가 강조한 것은 띠따의 친구 A가 보통 사람과 좀 다른 특별한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그 특별함 중 하나는 A가 진짜 수다쟁이라는 점이었다. 직업적으로, 혹은 천성적으로, 혹은 직업적이면서도 천성적으로 다른 사람보다 세 배는 말이 많은 친구라고 했다. 납치를 당한 와중에도 얼마나 말을 많이 한 것인지, 납치범들이 제발 조용히 해달라고 부탁을 하더라나. 애초에 돈이 목적이었던 터라 때리거나 핸드폰을 뺏지도 않고 A를 살살 달래기만 했는데, 입을 막아버리면 한 푼도 주지 않을 것이라고 했더니 자기들끼리 한참 논의를 하고는 결국 그렇게 해주더란다. 외딴 산속 깊숙한 곳에 있는 오두막에 가두기는 했지만 끼니때마다 밥도 꼬박꼬박 주면서 VIP 인질 대접을 해주었는데, 이제 갓 스무 살 된 시골 청년 둘이 감시하는 일을 맡아서는 산에 올라오는 일도 쉽지 않으니 주변 사람들에게 당장 돈이 보내라는 전화를 하라고 다그치기만 하더라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A와 납치범 청년들 사이에 형성된 관계이다. 놀라운 일이지만, 얼마나 되는 돈을 줄 수 있느냐에 대해 긴 수다를 떨고 나니 제법 친근감 있는 존재가 되어 있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반찬으로 바부이(돼지고기)말고 마녹(닭고기) 바비큐를 사 오라는 심부름까지 시켰다나 어쨌다나. 암튼, A는 돈이야 평생 쓸 만큼 있다는 부자인지라 가정 경제에 큰 무리가 없는 정도의 돈을 납치범들에게 주고 풀려났는데 그렇게 헤어지는 과정에서 A를 감시했던 청년이 헤어짐을 아쉬워하는 표정으로 핸드폰 번호를 묻기에 알려주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걸 핸드폰 로드를 보내 달라고 요청하는 용도로 쓸 줄이야. A가 로드 200페소를 보내주었더니 깍듯하게 고맙다는 답장까지 보내왔다는 이야기를 끝으로 띠따는 씁쓸하게 웃었다. A가 워낙 당차고 인맥이 좋아서 그렇지 보통 사람 같으면 어림없었을 일이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하릴없이 집에 머물러야 했던 4월의 삼 분의 일 정도는 민다나오 지방에 대해 공부를 하면서 보냈다. 루손섬이야 방문해보지 않은 곳이 거의 없지만, 민다나오는 루손섬과 다르다. 민다나오 지역에서 가본 곳이라고야 다바오 시티와 수리가오 델 노르테(Surigao del Norte) 지역밖에 없으니, 방사로모 지역에 대한 이야기는 말레이시아나 브루나이에 대한 이야기처럼 멀게만 들렸다. 그리고 레이가 고향인 잠보앙가(Zamboanga)를 떠나 세부까지 이동했던 것이 새삼스럽게 존경스럽게 여겨졌다. 레이에게 고향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그저 즐거운 동화 같다고만 생각했는데, 몇 년이 지난 지금 민다나오 지역의 무슬림 역사에 관해 공부를 해보고 나니 내가 좀 어리석었다는 반성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커다란 바나나 한 송이가 20페소밖에 하지 않는데 도시에서 파는 바나나보다 훨씬 진한 노란색의 바나나를 맛보게 되면 "마사랍(타갈로그어로 맛있다는 뜻)" 대신 "사브로소"라고 말하면 된다는 이야기나 술루섬 사람들은 쪽배를 타고 말레이시아로 장을 보러 간다는 등의 이야기를 신기하고 흥미롭게 들었는데, 그 이야기가 치열한 생존의 이야기였음을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많은 이들이 마음먹기에 따라 세상이 달라 보인다는 이야기를 흔히 한다. 상당히 공감되는 이야기이다. 상황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상황을 받아들이는 내 마음가짐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종종 깨닫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끔 아무리 마음을 먹어도 세상이 긍정적으로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주변이 뾰족하게 다가온다면 나 혼자 아무리 긍정적인 마음을 먹어도 세상이 밝아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레이에게 고향은 뾰족한 가시덤불이었다. 문제는 레이가 자신을 남자로 여겼다는 것이다. 나무 위에 올라가서 코코넛 따기를 마을의 그 누구보다 잘했던 레이였다. 잠보앙가에서도 아주 후미진 벽촌에서 성장했는데, 아주 어린 아이였을 때부터 여성적인 것에는 하나도 관심을 두지 못했지만, 꽤 즐거운 유년기를 보냈다고 했다. 하지만 학교에 간다고 도시로 나오면서 이야기가 달라졌다.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이슬람교의 교리를 엄격하게 따르고 있는 동네에서 레이가 살아가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필리핀에는 톰보이가 많고 제법 용인해주는 분위기지만 그렇다고 차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닌데 레이네 고향 마을은 유독 그 차별이 심했다. 무슬림이면서도 레즈비언인 레이가 겪은 차별은 강하고도 혹독했다. 레이 동네의 여자들은 눈만 빼고 몸 전체를 감싸는 부르카(burqa)까지는 아니더라도 히잡(hijab) 정도는 입어주는 것이 예의였지만, 레이가 히잡을 입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다. 그리고 히잡을 입지 않은 여자는 취직이 쉽지 않았다. 레이는 시골에서 어떻게 그렇게 유창한 영어를 배웠을까 궁금했을 정도로 뛰어난 영어 실력을 갖추고 있었고, 머리가 비상한 편이었지만 면접을 통과할 수는 없었다. 하다못해 슈퍼 계산원으로 취직을 하려고 해도 치마로 된 유니폼을 입을 수 없다면 출근을 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어야만 했다. 자신의 성정체성을 버리지 않으려면 고향을 떠나 도시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슬픈 일은 그 차별이 취업이 어렵다는 그런 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차별은 생활 곳곳에 있었다. 하긴, 내가 레이와 알게 된 것도 그놈의 차별 때문이었다. 레이와 만난 것은 세부에서 일로일로로 가는 배 안이었다. 저녁으로 라면이나 먹을까 싶어 매점에 갔는데, 테이블 옆에 앉았던 이가 바로 레이였다. 그때 레이는 커피 젓는데 쓰는 얇은 플라스틱 빨대로 어설프게 라면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그 모양새가 이상하여 레이에게 왜 그걸로 라면을 먹느냐고 물었더니 매점 직원이 빨대밖에 없다고 그랬다나. 레이 뒤에 줄을 섰다가 똑같은 라면을 사고 포크는 물론 숟가락까지 받았던 나로서는 레이의 설명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뭔가 착오가 있었던 것 같아 재빨리 일어나 매점으로 가서 직원에게 포크를 달라고 요청했더니 구석에서 한 움큼이나 되는 숟가락을 찾아낸다. 나는 좀 씁쓸한 마음으로 숟가락을 받아다 레이에게 건넸다. 그리고 라면 한 그릇을 먹어 치우는 동안 레이와 친구가 되어버렸다. 그날 밤, 레이와 나는 갑판으로 나가 자정 넘도록 수다를 떨었다. 바다 위에서 보는 별이 참 어여쁘다고 이야기하는 내게 고향에서도 별이 참 잘 보인다고 이야기해주던 레이가 갑자기 정색을 하더니 정말 친해지기 전에 확인할 것이 있다는 이야기를 해왔다. 어떤 대답을 해도 이해한다면서 정직하게 답해달라는 단서를 붙이고 레이가 내게 건넨 질문은 자신이 무슬림인 것과 레즈비언인 것을 아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전자에 있어서는 각자의 선택이라고 말해주고, 후자에 있어서는 나와 사귀자고 이야기만 하지 않으면 아무 상관 없는 일이라고 답해주었다. 레이가 깔깔 웃으면서 자신은 이미 파트너가 있으며, 그렇지 않아도 지금 그 파트너를 만나러 가는 길이니 안심하라고 알려주었다. 우리는 종교니 성별이니 그런 지루한 이야기를 집어치우고 일로일로에 도착하면 함께 맥주를 마시자는 이야기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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