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닐라 생활: 민다나오의 마긴다나오와 심장을 톡톡 치는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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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콘텐츠 등록일:
2017년 4월 22일
남자의 노래는 구슬프기도 했고, 맑기도 했다. 징 소리처럼 심장을 톡톡 치는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 때문에 목이 마른다는 생각을 했던 것을 잊었다. 그렇다. 남자의 목소리는 물이 마시고 싶다거나 다리도 아프다는 것 정도야 모두 하찮게 여기게 만들어 주는 목소리였다. 누군가의 땀과 누군가의 눈물과 누군가의 웃음이 농축된 목소리가 넓은 퀴리노 그랜드 스탠드(Quirino Grandstand) 주변을 가득 채웠고, 낯선 악기들이 소리를 내는 와중에 화려한 군무가 이어졌다. 도무지 카메라 셔터를 누를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감을 가진 춤사위 속에서도 댄서들은 웃고 있었다. '우리 고향에서 살아가는 일에 비하면 이런 춤을 추는 것 정도야 아무것도 아니랍니다'라고 이야기를 건네는 듯했다.
지금 내게 징 소리처럼 울리는 목소리를 들려주는 이 남자는 마닐라의 알리완 축제에 참석하느냐고 구슬땀을 흘리고 있지만, 이 무대에 서기 위해 이 남자가 얼마나 긴 여행을 했을지 설명하려면 꽤 힘들다. 필리핀 무슬림 민다나오 자치구에서도 마긴다나오(Maguindanao)라는 곳이 있는데, 그곳에서도 다투 오딘 신수앗(Datu Odin Sinsuat)이라는 이름을 가진 곳에서 왔다고 했으니 말이다.
남자의 고향은 스페인 사람들이 들어오기 전까지 이 지역은 마긴다나오 왕국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짐작하다시피 이슬람을 믿었고, 아랍어를 공용어로 사용했다. 현대에 들어와 무슬림 자치구가 되면서 현재는 타갈로그어나 영어를 쓰기도 하지만 이 지방 사람들은 여전히 매우 독특한 억양의 언어를 쓴다. 마닐라 도시 사람들 입에서 전혀 이해하기 힘든, 그러니까 전혀 다른 언어처럼 들린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하니 말이다. 같은 필리핀이라는 나라 속에 있다고는 하지만 저 멀리 또 다른 나라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마긴다나오 왕국은 사라졌지만, 종교만은 여전히 이슬람이 강세라서 이 동네 사진을 뒤져 보면 선홍빛 이슬람 사원 앞에 수백 명의 사람이 기도하는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지도상에서 보면 다바오 왼쪽인데, 바닷가 옆으로 산을 끼고 있는 동네이다.
인터넷을 뒤져도 이곳에 대한 여행 정보는 거의 없는데, 바로 이곳이 외교부에서 무슬림이 활동하고 있으니 여행을 가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바로 그 지역이기 때문이다. 하긴, 여행객뿐만 아니다. 필리핀 현지인들도 남자의 고향 쪽으로는 거의 여행을 하지 않는다. 오랜 시간 전쟁을 했기에 외지인들에게 매우 폐쇄적이기 때문이다. 이 경계심에는 같은 필리핀 사람이라고 예외를 두지 않는다. 듣기로는 이곳에 외지인이 들어가면 며칠 내로 동네 사람들 모두가 낯선 이가 왔음을 알게 될 정도라고 했다. 가끔 민다나오에서 왔다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애초에 그곳에서 태어난 그들 스스로는 살기 괜찮을지 몰라도 그 괜찮음이 외부인에게까지 적용되는 것은 아닌 셈이다. 이들은 누군가 낯선 이가 침범할 수 없도록 아슬아슬한 상태의 끈을 놓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생활에 대한 경계심이 춤의 안무 내용까지 전쟁과 관련된 내용으로 만들어 내었다. 이들의 춤이 총알로부터 마을을 지켜달라는 내용을 골자로 한 춤이라고 했으니 하는 이야기이다. 뜨거운 햇살 아래에서 화려하게 치장한 사람들이 화려한 몸짓으로 살아남는 일에 대해 춤을 추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새 숨 가쁜 공연이 끝이 났다. 이렇게 그냥 듣고 흘려보내기는 아까운 목소리인데, 다큐멘터리 제작자나 유능한 소리 수집가라도 와서 이들의 목소리를 간직해두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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