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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에는 한국처럼 이름난 독립운동가가 많지 않지만, 그래도 역사 속에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그 이름이 기록되지 못했을 뿐이다. 스페인이 물러간 뒤 미국에서 필리핀을 지배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필리핀인이 독립을 외치다 죽은 사건이 있었으니, 바로 필리핀-미국 전쟁(1899년~1902년)이다. 

필리핀-미국 전쟁

미국-필리핀 전쟁

Philippine–American War

1899년~1902년 7월 4일

필리핀의 초대 대통령인 에밀리오 아기날도(Emilio Aguinaldo)는 자유와 독립의 후원자인 미국이 필리핀의 독립을 도울 것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미국은 필리핀을 아시아 전체로 나아가는 관문이자 기지로 삼고자 했다. 그리고 미국이 마닐라항을 장악하고 아시아로 나가기 위해서는 필리핀 독립운동 세력을 저지하고, 필리핀 전체를 식민지로 삼는 수밖에 없었다. 1898년 12월 10일, 미국은 파리조약(미국-스페인 강화조약)을 통해 스페인으로부터 필리핀의 지배권을 양도받게 된다.

파리조약 체결 후 윌리엄 매킨리 미국 대통령은 필리핀의 독립을 부인하고 "필리핀 제도는 미국의 자유로운 깃발 아래 놓여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하지만 필리핀 혁명 정부에서는 이를 쉽사리 인정하기 어려웠으니, 미군에 대한 무장 투쟁을 개시했다. 하지만 미국으로부터 독립하려는 필리핀 제1공화국의 시도는 성공하지 못했다. 실상 필리핀-미국 전쟁은 누가 봐도 필리핀에서 이기기 어려운 싸움이었다. 

1899년 3월, 혁명 정부의 근간이던 불라칸의 말로로스마저 미군에 의해 함락되자 에밀리오 아기날도는 혁명군인들을 해체하고 무장 게릴라를 소집하여 미국에 대항하는 것으로 전략을 바꾸었다. 하지만 게릴라전으로 전술을 변경한 뒤에도 미군을 이기기란 어려웠다. 필리핀 혁명정부는 루손섬 북쪽으로 피신했지만, 모든 것이 불리한 상황이었다. 1899년 6월, 필리핀 혁명군 총사령관이었던 안토니오 루나가 사망한 것도 전투는 더욱 어려움으로 빠트렸다.

그러다가 1901년 3월 23일, 에밀리오 아기날도가 이사벨라의 팔라난(Palanan)에서 미군에게 체포되어 마닐라로 끌려가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후 1901년 4월 1일, 아기날도가 미국에 충성을 맹세하면서 필리핀 제1공화국은 해체되어야 했다. 필리핀 혁명정부의 대통령 신분이었던 에밀리오 아기날도가 미국이 필리핀을 지배하고 있음을 인정하였으니, 사실상 필리핀-미국 전쟁은 이때 끝나게 된다. 아기날도가 물러난 후에도 필리핀 독립운동가들의 지속적인 저항이 있었지만 미국에 대항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1902년 7월 4일, 루스벨트 대통령은 필리핀 평정되었으며, 필리핀-미국 전쟁이 끝났음을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기록에 따르면 필리핀-미국 전쟁을 위해 동원된 미군은 무려 12만 6,000명이었다고 한다. 미군 사망자는 4,374명이지만 미군 사망자 대부분은 질병(콜레라)으로 인한 사망으로 전투에서 사망한 사람은 1,500명 정도로 추정된다. 하지만 필리핀 쪽의 피해는 참담했다. 3년 2개월 동안의 전쟁으로 2만 명의 필리핀인 군인이 사망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야 했다. 대량학살에 가까웠던 미군의 전술로 민간인 사망자 수도 최소 20만 명은 되리라 추정된다. 필리핀-미국 전쟁 중이던 1901년 11월, 필라델피아의 일간지인 필라델피아 레저(Public Ledger)의 기자는 필리핀에서 미군이 저지른 만행에 대해 다음과 같이 고발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전쟁은 희극적이고 익살스러운 내용의 가극에 나오는 한가한 놀이가 아니다. 우리 군인들은 무자비의 극치를 달리고 있다. 남자고 여자고 어린아이고 할 것 없이, 반군 포로와 단순 체포자, 반군 활동 적극 가담자와 반군인 것으로 의심되는 자를 가리지 않고 10세 이상이면 다 죽여 버린다. 씨를 말리려고 작정을 한 것 같다. 필리핀 사람은 개보다 나을 것 없다는 생각까지 만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