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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닐라 LRT 길모어역(Gilmore Station) 옆으로 로빈슨 마그놀리아 (Robinsons Magnolia) 쇼핑몰 쪽으로 가면 길쭉하게 뻗은 도나 헤마디 스트리트(Doña Hemady St)를 볼 수 있다. 이 거리의 이름이 도나 헤마디가 된 이유는 간단하다. 도나 막달레나 헤마디가 이 지역을 개발했기 때문이다.

레바논 출신의 여성사업가인 도나 막달레나 헤마디(Doña Magdalena Hemady)는 필리핀 최초의 부동산 개발업자로 여겨지는 인물이다. 필리핀에는 문과 울타리로 구역이 분리된 주거지가 많은데 이런 게이티드 커뮤니티(Gated community)가 그녀의 아이디어라고 한다. 필리핀 제도 도민정부(도민정청) 시절에 도나 막달레나 헤마디는 퀘존에 무려 천 헥타르(300만 평)에 달하는 땅을 소유하고 있었다고 하는데 허허벌판에 가까운 땅이었던 터라 매우 헐값에 땅을 사들였다고 한다. 필리핀의 땅을 잔뜩 산 그녀는 막달레나 에스테이트(Magdalena Estate)를 세워 토지 개발에 나섰다. 1920년대 필리핀 제도 도민정부의 총독(Governor-General)이었던 유진 앨런 길모어(Eugene Allen Gilmore)의 이름을 딴 길모어 애비뉴(Gilmore Avenue)와 도나 헤마디의 며느리인 빅토리아의 이름을 딴 빅토리아 애비뉴(Victoria Avenue), 브로드웨이 애니뉴(Broadway Avenu) 그리고 파시픽 애비뉴(Pacific Avenue)가 모두 포함된 거대한 지역이었다.

퀘존 뉴마닐라 주거지역

New Manila

1920년대 도나 헤마디는 자신이 가진 아시엔다 헤마디(Hacienda Hemady)의 땅을 여러 구획으로 나눈 뒤 상류층을 위한 고급 주거 지역으로 개발했다. 띄엄띄엄 몇 채의 집만 있던 땅에 바둑판 모양의 넓은 도로가 만들어졌고, 망고나무가 쭉 심어진 거리를 따라 넓고 쾌적한 주택이 하나둘씩 지어지기 시작했다. 스페인 식민지 시대의 건축양식에서 벗어난 미국식과 유럽식 형태의 주택이었다.

1920년 당시 이 주거지역은 마닐라 시티의 복잡함을 피해 이사한 사람이 많아서 뉴마닐라(New Manila)라고 불렀는데, 마닐라에서 가장 비싼 고급 주택가답게 베니그노 아키노 시니어(니노이 아키노의 아버지)와 엠마누엘 펠라에스 부통령과 같은 정치인을 비롯하여 당시 필리핀의 유명 인사 상당수가 거주했다고 한다. 필리핀 자치령 코먼웰스의 초대 대통령이었던 마누엘 케손 대통령도 길모어 애비뉴에 주말 별장 용도의 집을 가지고 있었다. 1930년대에는 이곳에 영화제작사의 스튜디오가 들어서며 '필리핀의 할리우드'라고 불리기도 했다.

태평양 전쟁으로 마닐라 곳곳이 파손되었지만, 도나 헤마디가 조성한 아시엔다 헤마디 주거지역은 마닐라 시티와 거리가 떨어져 있었던 덕분에 1945년 마닐라 전투(Battle of Manila)에서도 큰 손상 없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덕분에 전쟁 후 학교와 병원 등이 이 지역에 잔뜩 들어서게 되었는데, 1960년대 이 지역 주택 시장은 호황을 맞게 된다. 그러나 이후 새로운 고급 주거지가 마닐라 곳곳에 생기면서 이 지역은 예전과 같은 고급 주택 이미지를 갖지 못하게 되었다. 물론 요즘도 뉴마닐라 지역의 집값은 여전히 상당히 고가이다. 1920년대만큼 고급 주택지로 여겨지는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중산층 이상이 사는 거주지로 여겨진다. 맨션과 타운하우스가 많은데 새로 지어진 120제곱미터(36평) 타운하우스가 4,500만 페소(한화 10억 정도)를 호가한다.

🜹 마누엘 케손 대통령이 소유했던 길모어 애비뉴의 주택은 2013년에 케존 메모리얼 서클(Quezon Memorial Circle)로 이전하여 복원되었다. 마누엘 케손 헤리티지 하우스(Quezon Heritage House)라는 이름의 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