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역사: 1965년,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 취임 - 21년간 장기 집권한 독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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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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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이야기는 아주 짧게, 혹은 아주 길게도 가능하다. 짧게 이야기하자면, 그는 1965년부터 1986년까지 무려 21년간을 집권한 독재자였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를 "마르코스 시절에는 인권탄압과 부정부패가 극심했다"라고 가볍게 요약하기는 피해자가 너무 많다. 마르코스가 부정 축재한 100억 달러의 재산 역시 아직 절반 이상 마르코스 가족의 소유로 남아 있다.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 본명: Ferdinand Emmanuel Edralin Marcos Sr.
· 1917년 9월 11일 출생~1989년 9월 28일 사망(72세)
· 필리핀 제10대 대통령
· 대통령 재임 기간: 1965년 12월 30일 ~ 1986년 2월 25일(21년)
- 21년간 장기 집권한 부패정치의 주범
- 필리핀 제3공화국 마지막 대통령, 필리핀 제4공화국 대통령
- 계엄령으로 독재체제를 구축하여 인권을 탄압한 독재자
- EDSA 혁명으로 축출된 후 하와이로 망명
- 배우자: 이멜다 마르코스 / 아들: 봉봉 마르코스(제17대 대통령)
페르디난드 마르코스와 관련된 주요 사건 타임라인
날짜 | 주요 사건 |
1965년 12월 30일 |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 취임(필리핀의 제10대 대통령) |
1972년 9월 23일 |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 계엄령 선포 |
1973년 1월 17일 | 헌법개정(1973 Constitution) |
1981년 1월 17일 |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 계엄령을 해제하는 선언문을 발표 |
1983년 8월 21일 | 니노이 아키노 전 상원의원, 마닐라공항에 암살 |
1986년 2월 7일 | 1986년 필리핀 대선 |
1986년 2월 22일~25일 | 피플 파워 혁명(EDSA 혁명) |
1986년 2월 25일 | 코라손 아키노 대통령 취임(필리핀 제11대 대통령) |
1986년 2월 26일 |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미국으로 망명 |
1987년 2월 2일 | 1987년 필리핀공화국 헌법 제정으로 대통령 임기를 6년 단임제로 제한 |
1989년 9월 28일 |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미국에서 사망 |
2022년 6월 30일 |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봉봉 마르코스), 필리핀의 제17대 대통령으로 취임 |

어린 시절
페르디난드 마르코스(Ferdinand Marcos)는 일로코스 노르테의 사랏트(Sarrat)에서 태어났다. 그는 변호사이자 하원의원인 아버지를 둔 덕분에 어린 시절을 유복하게 보낼 수 있었는데, 페르디난드 마르코스의 아버지인 마리아노 마르코스는 일본점령기 일본의 협력자라는 이유로 필리핀 게릴라에 의해 처형당했다고 한다.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마르코스 본인은 일본에 저항하다 일본군에 의해 처형당했다고 주장했지만, 마르코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자료는 특별히 발견되지 않았다. 마르코스는 자신이 안토니오 루나 장군의 후손이라고 주장한 바 있지만 이 주장 역시 사실무근임이 밝혀졌다.
마닐라로 올라와 법학을 공부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는 1939년 변호사 시험에서 최고 득점자로 합격한다. 이즈음 그는 1933년에 아버지의 정적을 살해했다는 혐의로 기소되어 받았던 유죄 선고에 대해 무죄 판결을 받았다. 흥미로운 것은 당시 그의 사건을 맡았던 부장판사가 일본점령기 때 허수아비 대통령 노릇을 한 호세 라우렐이라는 것이다. 호세 라우렐은 마르코스의 사건에 대해 꽤 적극적으로 무죄를 주장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후 태평양 전쟁이 터지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는 장교로 군에 복무하게 된다. 그리고 이때의 군 복무 경력은 추후 그가 "필리핀에서 가장 많은 훈장을 받은 전쟁영웅"이라며 자신을 알리는 근거가 된다. 하지만 미군의 군사 기록에 따르면 일본군에 맞서 싸웠다는 마르코스의 주장은 대부분 거짓이거나 부정확하다고 한다.

대통령 당선
전쟁이 끝난 뒤 페르디난드 마르코스는 1946년부터 1947년까지 마누엘 로하스 대통령의 보좌관으로 일하게 된다. 이후 1949년 일로코스 노르테 지역의 하원의원으로 당선되어 본격적으로 정치판에 뛰어든 그는 상원의원, 상원의장 등을 거치며 정치적 기반을 다졌다. 여담이지만 정치적 기반을 쌓은 이 시기 페르디난드 마르코스는 카르멘 오르테가(Carmen Ortega)란 여성과 사실혼 관계로 살며 세 명의 아이까지 낳고 마닐라 산후안에 살았다고 한다. 하지만 1954년 마르코스는 이멜다 마르코스와 결혼한다.
1965년, 페르디난드 마르코스는 필리핀의 10대 대통령으로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대통령 취임 연설에서 '국가의 위대함을 되살리는 것'에 대해 열변을 토하던 마르코스는 대통령 당선 초기만 해도 정부 개혁과 경제발전, 부정부패 척결 등을 추구했다고 한다. 효율적인 세제 개편과 대외 차관 유치로 국가 재정의 안정을 도모하고, 인프라 투자로 국가 경제 발전을 주도하려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대통령으로 집권한 초기에 추진한 경제개혁으로 국민들의 높은 지지를 얻으며 첫 번째 임기(1965-1969)를 마쳤다.
그런데 필리핀 대통령의 임기가 6년 단임제가 된 것은 마르코스 대통령이 물러난 이후이다. 즉, 1969년 당시만 해도 1935년 헌법에 따라 필리핀 대통령의 임기는 4년이며 연임이 가능했다. 연임을 노리며 1969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는 부채로 조달된 자금을 캠페인 선거에 쏟아부었다. 그리고 대통령에 재선되며 두 번째 임기(1969-1972)를 시작했는데, 두 번째 임기가 끝나기 전인 1972년 9월 21일 퇴임 대신 계엄령을 선포했다. 계엄령과 1973년 헌법개정은 대통령에게 절대 권력을 부여하는 기반이 되었다. 자신이 원했던 바에 따라 작성된 헌법으로 행정권은 물론 입법권과 사법권까지 장악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는 대통령 권력을 강화하는 독재 체제를 구축했다. 1981년 2월 17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필리핀 방문을 앞두고 1981년 1월 17일 페르디난드 마르코스는 계엄령을 해제하는 선언문을 발표했다. 하지만 계엄령 시절 그가 누렸던 주요 권한은 그대로 유지하도록 했다. 그리고 1986년 피플 파워 혁명(EDSA 혁명)으로 자리에서 물러날 때까지 사실상 모든 권력을 유지하고 독재를 계속 강행하였다.
1972년 계엄령 선포
1972년 마닐라에서는 약 20회나 되는 크고 작은 폭탄 테러가 일어났다. 이 폭탄 테러가 공산주의자에 의한 것이라는 증거는 전혀 없었지만, 마르코스는 이 일을 공산주의자의 소행으로 돌렸다. 그리고 1972년 9월 23일, 페르디난드 마르코스는 계엄령을 선포한다. 공산주의 반란 위협과 학생 시위, 이슬람 반군 등으로 인해 발생한 무질서 등에 대처한다는 이유였다.
국가 전복 세력의 위협에 대처한다는 명문으로 시작된 계엄령 선포는 심각한 인권 침해로 이어졌고, 필리핀의 민주주의는 바닥으로 내몰렸다. 필리핀 내 정당 활동을 금지하고 의회를 해산시킨 뒤 통행금지령이 내려졌고, 언론의 자유를 금지하면서 ABS-CBN 등과 같은 민영 방송사는 물론 신문사까지 대부분이 사라졌다. 언론, 집회, 이동의 자유가 모두 사라진 상황에서 치안은 붕괴했고, 계엄령을 반대하는 정치지도자와 언론인은 물론 지식인과 학생까지 예외 없이 모두 반정부 활동을 한다는 이유로 투옥되었다. 수천 명의 반대파 정적 야당 정치인이 체포되고, 군과 경찰은 마르코스 정권에 반대하는 이들을 고문하고 죽였다. 마르코스 한 사람에게 집중된 절대 권력 아래 인권 유린과 각종 부정부패가 만연한 시절이었지만 국민의 인권이 침해당하고 있음을 알릴 신문조차 이미 없어진 상태였다.
1986년 피플 파워 혁명(EDSA 혁명)으로 마르코스가 대통령 자리를 내놓고 하와이로 도망친 뒤 필리핀에서는 마르코스 정권하에서 납치 및 고문, 처형 등을 당한 피해자의 수를 조사했는데 실종자로 처리된 사람의 수만 해도 엄청났다. 자료마다 그 숫자가 다르지만 국제인권단체인 국제앰네스티에 따르면 약 7만 명이 투옥되었고, 3만 4천 명이 고문을 당했다고 한다. 사망자도 최소 3,200명으로 추정된다.

1983년 니노이 아키노의 죽음
1983년 마르코스의 독재정치에 반대하던 베니그노 아키노 2세(니노이 아키노) 전 상원의원이 마닐라공항에서 총에 맞아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마르코스의 정치적 적수였던 아키노의 암살 사건은 필리핀 민주화 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다. 아키노의 죽음으로 필리핀 내 반정부 시위가 촉발되고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필리핀의 경제 상황은 점점 최악의 침체 상황으로 빠졌다. 1985년 마르코스 대통령이 개인적으로 보유한 부동산의 목록이 폭로되며 탄핵을 요구하는 결의안이 나왔지만 부결되었다.
1986년 피플 파워 혁명
1986년 2월 7일, 대통령 선거가 치러졌다. 필리핀 선거관리위원회(Comelec)의 직원이 선거 결과를 조작했음을 폭로하는 등 부정선거 행위가 있었음에 대한 명백한 증거가 발견되었지만, 필리핀 선거관리위원회(Comelec)는 마르코스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며, 마르코스가 다시 대통령으로 취임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마르코스의 권력 남용과 부정부패, 경제 불안에 대한 대중의 분노는 결국 피플 파워 혁명(EDSA 혁명)이라고 불리는 민주화 시위로 이어졌다.
1986년 피플 파워혁명(EDSA 혁명)은 자발적인 민중의 봉기를 통해 페르디난드 마르코스의 독재를 비폭력으로 전복시킨 혁명이다. 마닐라 대교구장이었던 하이메 신 추기경이 민중의 편에 서고 마르코스와 육촌지간인 피델 라모스마저 마르코스에게 등을 돌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는 21년 동안의 장기독재를 접고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났다. 시민들이 EDSA 거리로 나와 마르코스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며 피플 파워(민중의 힘)를 보여준 것이다. 마르코스가 물러난 뒤 필리핀 제11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사람은 니노이 아키노 전 상원의원의 아내였던 코라손 아키노였다.

미국으로 망명
1986년 2월 26일, 페르디난드 마르코스는 21년 동안 지속해 온 독재정치에서 물러나 미국 정부의 주선으로 하와이로 망명한다. 당시 그는 헬리콥터를 타고 클락의 공군기지로 이동한 뒤 클락에서 미 공군 비행기를 타고 하와이로 이동했다고 하는데, 빈손이 아니었다. 미군 세관 기록이 23페이지에 달할 정도로 많은 물건이 함께였다. 약 80명의 측근과 함께 수십 개의 현금 상자와 금괴, 귀금속 보석상자 등을 가지고 하와이에 간 마르코스의 가족은 하와이에 머무는 동안 고급 주택지에서 호화롭게 살며 필리핀으로 돌아갈 계획을 세웠다.
피플 파워 혁명 당시만 해도 마르코스 가문은 정치적으로 몰락한 것처럼 보였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이멜다 마르코스에게는 21년에 걸쳐 부정 축재한 거액의 재산과 맹목적인 지지자가 있었다. 이멜다 마르코스는 1991년 필리핀으로 귀국했고, 하원의원에 당선되며 정치적으로 재기했다. 이멜다 마르코스는 대통령 선거에까지 나갔지만, 당선이 되지는 못했다. 대신 아들인 페르디난드 ‘봉봉’ 마르코스 주니어가 2022년 필리핀의 제17대 대통령 자리에 오르면서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격언을 떠올리게 했다.
국립묘지에 안장된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대통령은 1989년 9월 28일 향년 72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이멜다 마르코스는 하와이에서 사망한 남편의 시신을 필리핀으로 운구하여 국립 영웅묘지(마닐라 국립묘지)에 안장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계엄령 당시의 피해자들에게 독재자인 마르코스가 영웅처럼 국립묘지에 안장되는 것은 용납되기 어려운 일이었다.
1993년, 이멜다 마르코스는 페르디난드 마르코스의 시신을 하와이에서 일로코스 노르테에 있는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 센터(Ferdinand E. Marcos Presidential Center)로 옮겼다. 그리고 마르코스의 지지자들을 위해 방부처리를 한 시신을 유리관에 넣어 전시했다. 이후 2016년 두테르테가 정권을 잡으면서 이멜다 마르코스는 마르코스의 시신을 국립 영웅묘지에 안장하는 것에 성공한다. 그래도 국민들의 반대 시위를 모두 무시할 수는 없었는지 마르코스의 지지자들에게조차 알리지 않고 슬그머니 묘지이장이 진행되었다.
𖠿 관련 글 보기: 필리핀 역사: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 묘지는 어디에?





⚑ 위의 콘텐츠는 아래 자료를 참고로 작성되었습니다.
· Official Gazette: The Fall of the Dictatorship
· Official Gazette: Infographic: The day Marcos declared Martial Law
· Official Gazette: Martial Law
· Presidents of the Philippines: ERDINAND EMMANUEL E. MARCOS SR.
· GMA News: PCGG: No new cases against the Marcoses expected over ill-gotten wealth
· Official Gazette : 1973 Constitution of the Republic of the Philippi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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