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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역사: 1807년, 바씨 반란 - 일로코스의 행정구역이 나뉘게 된 원인은 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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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의 내용은 필인러브 운영자의 개인적인 의견이 포함되어 있으며, 정사가 아닌 야사를 바탕으로 한 부분도 있습니다.

콘텐츠 등록일:

2024년 10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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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씨 반란을 묘사한 그림 - 비간의 일로코스 박물관 단지(NM Ilocos Regional Museum Complex) 소장품
바씨 반란을 묘사한 그림 - 비간의 일로코스 박물관 단지(NM Ilocos Regional Museum Complex) 소장품

바씨 반란(Basi Revolt)은 1807년에 필리핀의 일로코스 지방에서 스페인 정부의 정책에 반발하여 일어났던 민중 봉기이다. 스페인 식민지 시대 벌어졌던 크고 작은 민중봉기 중에서도 바씨 반란이 유독 눈에 띄는 것은 이 반란의 여파로 일로코스 지방의 행정구역이 일로코스 노르테(Ilocos Norte)와 일로코스 수르(Ilocos Sur)로 분리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반란의 원인도 좀 흥미롭다. 일로코스 전역에서 일어났다는 이 반란은 다름 아닌 바씨(Basi)라는 이름의 술 때문에 시작된다.



 

일로코스 바씨 반란

Basi Revolt in Ilocos

Ang Pag-aalsang Basi

스페인의 주류 제조 및 판매권 독점에 대항하여 일어난 봉기 

기간: 1807년 9월 16일~ 1807년 9월 28일

 

바씨 반란(Basi Revolt)은 반란을 주도했던 암바리스토의 이름을 따서 암바리스토 반란(Ambaristo Revolt)이라고도 부른다.


바씨 반란의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장소는 필리핀 루손섬 북부에 있는 일로코스 노르테(Ilocos Norte). 주인공은 살라로고 암바리스토(Salarogo Ambaristo)와 페드로 마테오(Pedro Mateo)라는 사람이다. 그리고 문제가 된 것은 바씨(Basi)라고 이름의 술이다.


바씨는 사탕수수를 으깨 즙을 낸 뒤 파타얀(Tapayan)이라고 부르는 토기에 넣고 찹쌀가루며 향료 등을 더해 발효시켜 만드는 술이다. 어느 지역이나 집에서 빚은 가양주가 있기 마련이지만, 1807년 당시 일로카노(Ilocano, 일로코스 지역 사람들을 의미)에게 바씨는 좀 더 각별했다. 마치 한국인의 막걸리처럼 일로카노의 삶 속에서 늘 함께하는 서민들을 위한 술이라 바씨 없는 삶은 상상하기도 어려웠다. 바씨가 없다면 어떻게 결혼식이나 장례식과 같은 행사를 치르고 고된 농사일의 고됨을 견디겠는가?


그런데 스페인에서 바씨의 생산 및 판매를 독점하겠다고 나서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집에서 직접 술을 빚는 것도, 바씨를 만들어 파는 것도 모두 금지된 것이다. 바씨를 만들어 팔아 통해 생계를 유지했던 이들에게 스페인에서 지정한 상점만 바씨를 판매할 수 있게 되었다는 소식은 절망 그 자체였다.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가 밀주단속을 하던 것과 비슷한 일이 벌어졌으니, 불합리한 정책에 대한 심한 반발이 생겨났다.


피디그 바랑가이의 캡틴이었던 살라로고 암바리스토는 이 분통이 터지는 소식을 순순히 집에 앉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바씨만큼은 지켜내야 했다. 그는 옆 마을의 페드로 마테오와 함께 노란색과 빨간색의 줄무늬가 있는 깃발을 준비한 뒤 격앙된 마을 사람들을 이끌고 비간을 향해 행진했다. 암바리스토네 마을 사람들이 불공평한 차별에 반대하는 의미로 비간으로 행진하고 있다는 소식은 주변 마을로 퍼져 나갔다. 비간까지 향하는 길은 멀었지만 사랏트, 바탁, 파오아이, 산니콜라스 등 주변 마을 사람들이 행진에 함께 합류하며 반란의 무리는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연못에 돌을 던지면 물결이 사방으로 퍼져나가듯 일로코스 지역 전체에 바씨만큼은 지켜내야 한다는 기운이 퍼져나갔다.


하지만 바씨 반란은 스페인에서는 군대를 보내 진압에 나서면서 불행하게 끝나야만 했다. 일로코스 전체에 격렬한 반발의 움직임이 들끓는 상황이 되자 스페인에서 군인들을 보내 반란을 진압한 것이다. 마을 사람들의 초라한 무기가 스페인 군대의 총과 칼을 이길 수 없었다. 반란에 대한 진압은 가혹했고, 반타오아이 강 주변이 붉게 물들 만큼 수없이 많은 마을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 스페인의 군인들은 참수된 사람들의 머리를 광장에 걸어 스페인 정부의 정책에 반대할 경우 어떤 꼴을 당하는지 보여주었다.


바씨 반란이 진압된 뒤 10년 후인 1818년, 스페인에서는 바씨 반란 때처럼 일로코스 지역 전체에 반발이 기운이 퍼지는 것을 막고자 일로코스 지방의 행정구역을 둘로 나누었다. 행정중심 도시를 기준으로 비간이 있는 곳은 일로코스 수르(Ilocos Sur)가, 라왁시티가 있는 곳은 일로코스 노르테(Ilocos Norte) 지역이 되었다.


필리핀 비간의 일로코스 박물관 단지(NM Ilocos Regional Museum Complex) 전시품

⚑ 위의 콘텐츠는 아래 자료를 참고로 작성되었습니다.

· National Museum of the Philippines: The Basi Revolt

· National Museum of the Philippines: Basi Gallery

· National Museum of the Philippines: National Museum of the Philippines – Ilocos

· Manila Bulletin: National Museum launches virtual edition of 'The Basi Revo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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