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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뉴스: 트랜스젠더 여성 그레첸과 클락공항의 성중립 화장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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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등록일:

2021년 7월 15일

마닐라의 길거리에 마련된 남성용 화장실
마닐라의 길거리에 마련된 남성용 화장실

트랜스젠더 여성은 여자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을까?

성소수자라서 화장실 이용이 불편했다면, 클락국제공항에서만큼은 안심하자. 클락공항에서 새로 오픈하는 제2여객터미널에는 성중립 화장실(Gender-neutral restroom)이 마련되어 있다. 그런데 이 성중립 화장실이 공항에 마련되기까지는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2019년 8월 말의 이야기지만, 필리핀 민간항공청(CAAP)에서 갑자기 민간항공청에서 관리하는 42개 모든 공항에 성소수자 위한 성중립 화장실(all gender restroom)을 갖추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발표를 한 바 있다. CAAP는 이미 2015년부터 공항에 성중립 화장실(혼성 화장실) 설치 프로젝트를 시작하였고, 당시 마닐라 파사이 시티에 있는 CAAP 사무실을 비롯하여 15개의 공항에 성중립 화장실을 설치한 상태였지만 새삼스럽게 화장실에 관한 이야기를 꺼낸 것은 단시 신문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던 어떤 사건 때문이었다.


2019년 8월 13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있었던 일이다. 28세의 트랜스젠더 여성 그레첸 디에즈(Gretchen Diez)는 쿠바오의 쇼핑몰에 방문했고, 쇼핑 도중 여성 화장실을 이용하려고 했다. 그런데 화장실 관리인은 남녀의 이분법적 구분이 확실한 사람이었다. 화장실 관리인이 봤을 때 트랜스젠더인 그녀는 남자 화장실을 이용해야 하는 사람이었으니, 그레첸에게 남자 화장실을 이용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러첸은 관리인에게 자신이 왜 여자 화장실에 들어갈 수 없는지를 물었는데, 그 과정에서 그레첸과 관리인 사이에 트래스젠더의 화장실 이용 문제를 놓고 논쟁이 벌어졌다. 화장실 관리인이야 자신의 업무에 최선을 다했을 뿐이라고 하지만, 논쟁 과정에서 뱉은 단어가 곱지는 못했다. 하나의 사소한 해프닝으로 끝났을지도 모를 이 사건이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된 것은 그레첸이 도둑처럼 범죄자 취급을 받았기 때문이다. 관리인과의 논쟁 끝에 쇼핑몰 보안실까지 간 그레첸은 어떤 규정에 근거하여 여성 화장실을 이용할 수 없다고 말하는지 알고 싶다고 거듭 요청했지만, 도둑처럼 수갑까지 차고 경찰서로 끌려가는 고초를 겪은 뒤에야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화장실을 이용하려고 했을 뿐인데 경찰에 체포되었으니 과도한 처벌이었다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그레첸 디에즈는 흥분하지 않고 논리적으로 이야기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당시 그레첸은 필리핀 내 주요 뉴스에 모두 얼굴을 내밀었는데, 그 기회를 제대로 활용했다. 그레첸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왜 자신이 당시 관리인과 논쟁을 시작했는지 그리고 그 논쟁의 장면을 왜 영상으로 촬영하여 페이스북에 올렸는지 그리고 자신이 어떤 부당한 대우를 받았는지에 대해 차분하게 설명했다. 자신이 어떤 억울한 일을 당했는지 주변인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영상을 찍었지만, 보안실로 끌려갔을 때는 쇼핑몰 보안 규정을 해치는 영상은 촬영하지 않았다고 설명하기도 잊지 않았다. 그녀의 목소리는 성소수자(LGBTQ)는 물론이고 일반인들에게까지 큰 공감을 이끌어 냈고, 성소수자들에게도 화장실을 이용할 권리가 있다는 여론을 만들어 내는 것에 성공했다. 이야기의 초점은 트랜스젠더가 여성 화장실을 이용 가능 여부보다 트랜스젠더들이 그동안 겪어야만 했던 어려움에 맞춰졌다. 어쨌든 쇼핑몰에서 과도한 대응을 한 것이 사실이기도 했다.



트랜즈젠더가 워낙 많아서 그런지 필리핀은 성소수자(LGBTQ)에 관대한 국가 중 하나로 알려져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필리핀에서 성소수자로 살아가는 일이 마냥 쉽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화장실 문제만 해도 그렇다. 트랜스젠더 여성이 여자 화장실을 이용해야 할지 아니면 남자 화장실로 가야 할지의 문제에 대한 반응은 사람마다 다르다. 어쨌든 외적으로 '여성'이나 '남성'처럼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나 트랜스젠더, 레즈비언, 혹은 인터섹스인 사람들이 남녀의 성별로 구분된 화장실을 편하게 이용하기란 쉽지 않다는 것이 사실이다. 이상한 시선을 받거나 화장실에서 쫓겨나는 정도로 그치면 그나마 다행인데 때로는 신체적인 폭력까지 당하는 모양이다.


그레첸 디에즈의 사건 이후 필리핀에는 성소수자들도 편안하게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SM슈퍼몰(SM Supermalls)과 같은 쇼핑몰은 물론이고 퀘존시청이며 버스터미널, 리조트 월드 마닐라 등 필리핀 곳곳에 성소수자를 위한 화장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성중립 화장실(Gender-neutral restroom)이 성소수자들만을 위한 화장실이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성중립 화장실은 태어날 때의 성별이나 성적 지향, 성 정체성, 나이, 장애 여부, 동반자 유무 등에 따른 차별 없이 모든 사람이 차별 없이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된 화장실이다. 공간상의 문제로 성별 구분을 하지 못하고 합쳐 놓은 남녀 공용 화장실과는 다른 개념의 화장실이다.


인공지능(AI) 음성 지원 서비스에 남녀 구분 없는 젠더리스(Genderless) 보이스가 등장한 것이 이미 3년 전의 일이다. 코펜하겐 프라이드란 덴마크 인권단체가 네덜란드의 버추 노르딕(Virtue Nordic)이라는 광고 회사와 함께 보이스 ‘Q’는 논바이너리(non-binary)의 목소리를 바탕으로 남성적이지도 여성적이지도 않은 목소리를 개발한 것이다. 그리고 작년 구글은 인공지능(AI) 툴에서 성별(gender) 구분 라벨을 사람들의 이미지 태그에 표시하지 않게 했다. 외모만으로 인간의 성별을 추론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이런 작지만 확고한 변화는 그레첸 디에즈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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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어 설명: 젠터 뉴트럴, 레즈비언, 게이, 트랜드젠더, 인터섹스, 퀴어, 젠더퀴어, 논바이너리의 차이


마닐라의 길거리에 마련된 남성용 화장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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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락공항 제2여객터미널(New Clark Airport passenger termi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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